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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으로 돌아가는 세계 · 08 / 10

제4부 · 국가와 중앙은행은 어디에서 등장하는가

위기의 마지막 순간, 누가 돈을 만드는가

자금 흐름이 갑자기 멈출 때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것은 손실의 삭제가 아니라 시간입니다.

금융위기 때마다 ‘중앙은행이 유동성을 공급했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것을 단순히 돈을 푼다고만 이해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칩니다.

시장이 불안해지면 금융기관들은 서로의 지급능력과 담보가치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평소 잘 돌아가던 자금 흐름이 갑자기 멈출 수 있습니다.

이때 중앙은행은 적절한 담보를 받고 유동성을 공급해 금융기관이 자산을 헐값에 급매하지 않고 결제를 이어갈 시간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제공하는 것은 돈인 동시에 시간입니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아무 자산을 담보로 무조건 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접근할 수 있는지, 어떤 담보를 인정하는지, 얼마의 헤어컷을 적용하는지, 금리와 기간은 얼마인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100조 원을 공급했다’는 숫자보다 때로는 그 조건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유동성을 공급했다고 이미 발생한 손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